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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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져’(having the eyes opened)가 무슨 내적 음성(an interior dictate)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유사한 표현들, 가령, 발람(Balaam)이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요, 그 구절에서 발람은 전능자의 환상을 보고 나서는 자신을 가리켜 ‘눈을 감았던 자’(the man whose eyes are opened)(민24: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That by having the “eyes opened” is signified an interior dictate is evident from similar expressions in the Word, as from what Balaam says of himself, who in consequence of having visions calls himself the “man whose eyes are opened.” (Num. 24:3)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민24:3)
그리고 요나단인데요, 그는 벌집의 꿀을 조금 맛본 후,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이 악하다는 내적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his eyes saw), 즉, 자신의 내적 시야가 열려 전엔 몰랐던 것을 지금은 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And from Jonathan, who when he tasted of the honeycomb and had a dictate from within that it was evil, said that his “eyes saw,” that is, were enlightened, so that he saw what he knew not. (1 Sam. 14: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삼상14:29)
더더욱 말씀에 보면, ‘눈’(the eyes)은 종종 이해(the understanding)와 거기서 나오는 내적 음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시편입니다. Moreover in the Word, the “eyes” are often used to denote the understanding, and thus an interior dictate therefrom, as in David: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시13:3) Lighten mine eyes, lest I sleep the sleep of death (Ps. 13:3),
여기 ‘눈’(eyes)은 이해를 가리킵니다. 에스겔에서도 보면, 의도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는’(have eyes to see, and see not)(겔12:2) 족속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where “eyes” denote the understanding. So in Ezekiel, speaking of those who are not willing to understand, who “have eyes to see, and see not.”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겔12:2)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사6:10) Shut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Isa. 6:10),
위 말씀은 그들로 볼 수 없게 해야지, 안 그러면 그들이 이해하게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denotes that they should be made blind, lest they should understand. So Moses said to the people,
※ 우리 생각엔, 어? 사람들이 깨닫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왜 그걸 막으시는 거지? 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게,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은 차라리 깨닫지 못하는 게 더 그들에겐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위 종특상, 그들은 오히려 깨닫게 되면 반드시 나중에 돌이켜 배신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차라리 몰랐더라면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를 텐데, 알고 나서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는 그의 사후 상태가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것이 영적 배신, 바로 신성모독이며, 이 신성모독의 죄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이 신성모독의 삶을 산 사람은 그 영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이 오염된다는 건 영의 상태가 계속 이랬다저랬다 영원히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29:4) Jehovah hath not given you a heart to know, and eyes to see, and ears to hear (Deut. 29:4),
여기서 ‘마음’(heart)은 의지를, ‘눈’(eyes)은 이해(the understanding)를 가리킵니다. 이사야에서는 주님을 가리켜,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he should open the blind eyes)(사42:7)라 하십니다. where “heart” denotes the will, and “eyes” denote the understanding. In Isaiah it is said of the Lord, that “he should open the blind eyes” (Isa.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42:7)
계속해서 이사야에서,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The eyes of the blind shall see out of thick darkness and out of darkness)(사29:18)라 하십니다. And in the same prophet: “The eyes of the blind shall see out of thick darkness and out of darkness” (Isa. 29:18).
그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사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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